본문 바로가기

1. 현재의 고민: 직업

선생님이라서 좋은 점

6. 선생님이라서 좋은 점

 

 

 

 

 

  어렸을 때, 자신이 내향적이라고 말하는 연예인들을 TV와 잡지에서 본 적이 있다. 나는 가수든 연기자든 코미디언이든, 연예인이 되려면 무척 외향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말을 듣거나 읽을 때마다 놀랐던 기억이 난다.

 

 

  내가 교사로 일하며 그렇게 힘들어하는 이유가 내향적인 성격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모든 선생님이 외향적이지는 않다. 내향적이지만 충분히 행복하게 지내는 선생님도 계실 것이다.

 

 

  그럼, 나는 선생님으로서 행복했던 적이 없나? 내가 교사로서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일까?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보며 같은 순간에 웃고 같은 순간에 울 때, 아이들이 과학 실험 결과를 신기해할 때, 아이들이 음악 시간에 배운 노래를 재미있어하며 부를 때, 초등학교 내내 친구 없이 따돌림당하던 아이에게 친구가 생겼을 때, 분노 조절이 되지 않던 아이가 스스로 감정을 다스리려 노력하게 됐을 때, 수업이 재밌었는지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며 아이들이 놀랄 때.

 

 

  그리고 또, 

 

 

  글씨를 잘 쓴다고, 그림을 잘 그린다고, 준비를 잘한다고 아이들이 나를 칭찬해줄 때.

 

 

  방학 때.

 

 

  일보다 더 고통스러운 개인적인 비극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 집중할 대상이 필요할 때.

 

 

  청년 실업률이 높다는 기사를 볼 때, 힘들게 살아가는 청년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볼 때.

 

 

  이 일 말고 다른 일로는 먹고 살 능력이 없어 보일 때.

 

 

  갖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가고 싶은 곳이 생겼을 때, 마음 편히 돈 쓰고 싶을 때.

 

 

  슬퍼 보이는 아빠가 웃었으면 할 때, 나라도 잘해야겠다는(아빠가 하라는 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그럴 때 교직이 좋아 보인다.

 

 

 

  그러니까 교직에도 분명 좋은 점이 있다. 당연하다. 교직에 좋은 점은 많다. 우리나라의 다른 직업에 비해 짧은 정규 근무 시간, 방학, 다달이 밀리지 않고 나오는 월급, 게다가 매년 오르는 월급, 정년 보장, 금액에 논란이 있지만 어쨌든 일정 기간 일하면 언젠가 받게 될 연금, 아직 미혼인데도 얼른 아이를 낳고 싶어질 정도로 출산과 육아를 지원하는 제도와 분위기. 대체로 직장 분위기가 '좋으며(개인주의적이지 않다는 뜻)', 학생들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보람을 느낄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장점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장점들은 쌀국수이고, 나는 물고기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쌀국수가 아무리 맛있어도 물고기에게는 의미가 없다. 물고기가 쌀국수를 먹지는 않기 때문이다. 혹시나 쌀국수 가게에서 기르는 물고기라면, 쌀국수가 맛있어서 장사가 잘될 때 물고기 밥도 끊이지 않는다는 정도의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가게가 바빠지니 물고기 챙기는 건 뒷전이 될 가능성도 있지만.

 

 

  꼭 좋아하는 것을 일로 삼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배웠다. 잘하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좋아하는 것은 취미로 즐기는 방법도 괜찮다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일의 고통을 줄여줄 만큼 큰 기쁨을 주는 취미를 찾지 못했다. 더 중요한 건, 이 일은 내가 잘하는 일이 전혀 아니라는 점이다. 

 

 

  요약하는 건 좋아하지만, 요약한 내용을 남 앞에서 발표하는 것은 싫다. 배우는 것은 좋아하지만 가르치는 건 부담스럽다. 책 '빨간 약'에서 이지성 작가가 했던 것처럼 학생들을 돕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지만, 나도 성치 않으면서 남을 돕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감하게 될 뿐이었다. 

 

 

 

  부모님이 좋아하신다. 월급이 꼬박꼬박 나온다. 게다가 매년 오른다. 정년이 보장된다. 정년이 지나면 연금을 받는다. 웬만하면 야근하지 않아도 된다. 방학도 있다. 아이를 낳을 경우 복지 혜택도 무척 좋다. 좋은 거 많다.

 

 

  하지만 힘들다. '힘들지만 재밌다'가 아니라, '힘들고 힘들다'. 사실은 '힘들고 끔찍하다'. 세상 모든 일이 다 힘들다지만, 그래도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을 것 같다.

 

 

 

  '출근하고 싶다', '나는 학교가 좋다', '아이들이 있어 행복하다', '직장이 있어 행복하다', '일이 있어 행복하다'.

 

 

  출근길, 퇴근길, 쉬는 시간, 점심시간, 수업 시간, 방과 후, 퇴근 후, 자기 전. 깨어있는 동안 수천수만 번 자기 암시를 해도 마법이 풀리는 건 한순간이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교직의 좋은 점'에 대해 더 할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