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내 성격이 대체로 장점이 될 일을 하고 싶어
에니어그램과 MBTI를 알아가면서, 누군가의 단점을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타고난 성격유형의 결과라는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의 부족한 점도,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도 미워할 필요가 없어진다. 너그럽게 이해할 여유도 생긴다.
하지만 내 성격을 받아들이는 데 가장 도움이 된 것은 따로 있다. 바로 수잔 케인의 '콰이어트'와 한나 홈스의 '성격'이라는 책이다.
에니어그램에서도 MBTI에서도,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도 결국 내 성격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는 '독립성'과 '내향성'인 것 같다. 그리고 내 '독립성'은 '내향성'에서 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 내향성에 대해 알려주는 '콰이어트'가 나를 이해하는 데 가장 도움을 많이 준 책이다. 예를 들면, 내가 남보다 더 고통스러워하고 더 쉽게 감동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고 자연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응성이 높은 아이는 생각과 느낌의 깊이가 깊고, 경험을 자세하게 구분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반응성 높은 아이는 내향적인 사람으로 자랄 가능성이 크다. 아마 내가 그런 경우인 것 같다.
'콰이어트'를 읽으면 알게 된다. 내향적인 성격이 단점이라는 생각, 내향적인 성격을 갖게 된 것이 성격을 고치려고 충분히 노력하지 않은 그 사람의 잘못이라는 생각은 틀렸다. 내향적인 성격으로도 성공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그렇게 되기 위해서 어떻게 자신의 내향성을 다루면 좋을지도 알게 된다.
내향적인 사람이라면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내향성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내향적인 사람뿐 아니라 내향적인 부모를 둔 자녀, 내향적인 자녀를 둔 부모, 내향적인 연인을 둔 연인에게도 '콰이어트'를 강력히 추천한다. 내향성을 이해하면, 외향적인 사람도 주위의 내향적인 사람과 행복하게 지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외향적인 국가라는 미국에서도 3분의 1에서 2분의 1 가량이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외향적인 사람이 내향성을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신과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럴 때 '콰이어트'를 읽으면 된다. 웃음이 새어 나오도록 유쾌하거나 손에 땀을 쥐도록 흥미진진하지는 않지만, 정말 유익하다.
성격과 관련된 책을 추천하면서 한나 홈스의 '성격'을 빼놓을 수는 없다. '콰이어트'에서는 칼 융의 '내향형'과 '외향형'을 중심으로 성격을 이야기한다. '성격'에서는 성격의 5요인 모델(빅 파이브)을 활용한다. 책에 나온 성격의 5요인 모델 검사를 해보니, 의외로 개방성 점수가 높게 나왔다. 내가 외향적이라 착각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 아닐까?
'성격'은 모든 성격이 가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가장 도움을 많이 준 책이다. '성격'을 읽으면 애니메이션 '트롤'과 '인사이드 아웃'에서 공통으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다시 한번 얻을 수 있다. '쓸모없는 성격(감정)은 없다', '모든 성격(감정)이 가치 있다'라는 교훈이다.
'성격'에서는 나의 못난 점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못난 점도 진화의 관점에서 얼마나 유용한 특성일 수 있는지 알려준다. 한심한 나의 성격뿐 아니라 나를 정말 화나게 한, 나에게 엄청난 상처를 준 사람의 성격조차 살아남을 만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지금은 그 성격 때문에 너무 힘들지만, 언젠가 그 성격 덕분에 인류가 멸종되지 않고 살아남을 날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좀 낫다.
자신의 성격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스스로가 미운 사람, 자신과 성격이 너무 다른 누군가가 미운 사람에게는 '성격'을 강력히 추천한다. 유익한 건 마찬가지지만, 내게는 이 책이 '콰이어트'보다 더 재밌기도 했다.
이 두 책만큼은 아니지만, 성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도움을 준 다른 책도 있다.
에니어그램 유형에 따라 상담한 사례를 모은 김화숙의 '마음이 나에게 말한다'를 읽을 때는 내가 직접 따뜻하게 상담받는 기분이었다.
이백용, 송지혜의 '결혼 후 나는 더 외로워졌다'에서는 성격이 정반대인 사람을 이해하며 행복하게 함께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인간이 불확실성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설명한 제이미 홈스의 '난센스'에서는 쉽게 불안해하는 내 성격을 이해하는 데 도움받을 수 있었다.
조나 버거의 '보이지 않는 영향력'은 사회적 영향력이 얼마나 강한지 알려주는 책인데, 태어난 순서가 성격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알려준다. 나와 동생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런 책들 덕분에 결국은 만족할 만큼 내 성격을 파악하게 되었다. 못난 점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 성격이 틀렸으니 고쳐야 한다는 폭력적인 생각을 멈추게 되었다.
하지만 교탁 앞에 서면 다시 흔들린다. 내 성격이 미워지고, 잘못된 것 같다. 바꾸고 싶고, 고치고 싶어진다. 나보다 훨씬 적게 준비하고도 혹은 전혀 준비하지 않고도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하는 외향적인 사람이 부러워진다. 다른 사람들 앞에 서는 걸 좋아하고,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분위기를 밝게 해주는 외향적인 사람이 부러워진다. 사람들 속에서 힘을 얻는 외향적인 사람이 부러워진다.
성격을 바꾸면 선생님으로서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초등학교 선생님에게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 체력, 지식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일을 하며 행복하기까지 하려면 리더십, 쇼맨십, 배짱, 놀아본 경험,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성격도 필요한 것 같다. 아니, 그런 사람이라면 어떤 일을 하면서든 대부분 행복하게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콰이어트'의 저자 수잔 케인은 내향적인 성격으로도 외향적인 특성이 필요한 일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다고 한다. 그 증거가 될 만한 사람도 많이 알려준다. 그러니 내향적이라고 해서 외향적으로 생활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외향적으로 생활하는 건 애초에 외향적인 성격일 때 훨씬 더 수월하다.
지금 내 성격으로는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행복하게 지내기가 너무 어렵다. 지금의 성격으로 잘 지내기 어렵다면, 성격을 바꾸는 방법이 있다. 물론 그동안 아무리 성격을 바꾸려 해도 잘되지 않았다. 하지만 누가 성격을 바꿨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도 희망을 품고 계속해서 더 노력했다.
그런데 갖은 애를 써서 성격을 바꾼다 해도 온전히 바뀌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타고난 뇌의 반응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전과 다르게 행동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뿐, 성격이 진정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말 아닌가? 무진 애를 써서 겉으로는 외향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되고, 남들에게 외향적으로 보이는 경지에 이르더라도, 내면은 그대로 내향적이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일까? 그렇다면 과연 이게 행복해지는 방법일까?
이 성격을 다른 성격으로 바꾸기가 그렇게 어렵다면, 그냥 이 직업을 좋아해버리면 어떨까?
뉴욕에서 감자 깎는 기계를 파는 조 아데스 할아버지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비싼 양복을 입고 길에서 감자 깎는 기계를 파는 이 할아버지는 '감자 깎는 신사'로 불린다고 했다. 15살부터 시작한 노점상 경력이 60년을 넘어간다. 엄청난 부자가 되고도 여전히 좌판을 펴는 모습이 신기했다.
노점상, 부자, 60년 등 인상적인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한 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행복해 보이는 이 할아버지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 행복의 비밀이라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뭔지 알아내려고 몇 년째 애쓰던 참이었는데, 할아버지 말대로라면 나는 행복의 비밀과 반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할 게 아니라,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해야 했다.
나도 좋아하고 싶다. 그런데 도무지 좋아지지 않는다. 수학도 운동도 좋아하려고 노력하니 어느 정도는 좋아하게 되었다. 먹기 싫은 야채도 좋아하려고 노력하니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몇 배로 노력했는데도, 선생님으로 일하는 건 아직도 좋아지지 않는다. 성격을 바꾸는 것만큼이나, 싫은데 억지로 좋아하게 되기도 결코 쉽지 않다는 걸 매일같이 느끼고 있다.
다카다 아키카즈가 쓴 '예민한 게 아니라 섬세한 겁니다'라는 책에서는, 혼자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일이라면 도망치는 것이 최선이라고 한다.
성격을 바꿔서든, 교직에 대한 애정과 사명감을 키워서든,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나를 맞추는 일은 혼자 힘으로는 확실히 어렵다. 노력하니까 점점 더 잘해야 하는데 오히려 더 못하게 되고 있다.
혼자 힘으로 바꿀 수 없다면 도망치라고 했지만, 그 전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볼 수도 있다. 심리 상담을 받고, 스피치를 배우고, 사람들 앞에 서는 경험을 반복하고, 인터넷 강사들의 수업 비법을 따라 하고, 다른 선생님과 경험을 공유하고, 혼내는 법을 배우고, 헬스장에서 PT를 받거나 체육관에서 무술을 배우고....... 휴.
성격을 바꾸지 못했다. 이 직업을 좋아하게 되지도 못했다. 혼자서든 도움을 받아서든, 앞으로 더 노력할 마음이나 힘이나 희망이 남아있지 않다. 하고 싶지도 않으면서, 안 되는 걸 하겠다고 계속 이렇게 매달리느니, 차라리 본래 성격을 최대한 발전시키는 게 낫지 않을까? 어떤 성격이든 장점은 있다. 상황에 따라 장점이 단점이 되고, 단점이 장점이 되는 거니까. 이유가 무엇이든 지금 있는 곳에서 내 성격의 장점을 발휘할 수 없다면, 다른 적절한 곳으로 옮기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어차피 세상 모든 일이 힘든데, 선생님이 아닌 다른 직업을 갖게 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냐며 체념하고 살 수도 있다. 감자 깎는 신사도 다른 일을 찾을 필요 없이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하는 일에서는 단점인 나의 특성들이 장점으로 발휘될 수 있는 일도 있지 않을까?
'예민한 게 아니라 섬세한 겁니다'에서는 예민한 사람에게 어울리는 직업도 소개한다. 예민함과 내향성이 완전히 같은 말은 아니지만, 반응성이 높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예민한 사람에게 추천한 직업이 내향적인 사람에게도 어느 정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책에 나온 직업은 예술, 출판 또는 식품이나 유아용품 관련 일 등이었다.
하지만 꼭 그런 일이 아니어도, 예민하게 일해서 힘든 점보다 좋은 점이 더 크다면, 힘든 점을 감당할 수 있다면, 그 일이 곧 예민한 사람에게 어울리는 일일 것이다.
누군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 활기차게 일하는 동안, 어쩌면 지루할 수도 있는 일을 뒤에서 혼자 묵묵히 할 사람도 필요하지 않을까?
어딘가에 그런 일이 있을 것이다.
내 성격이 대체로 장점이 될 수 있는 그런 일을 꼭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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