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성격을 바꾸고 싶어
이제는 내가 내향적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안다. 인정한다. 진작부터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꽤 오랫동안 외향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고, 내가 외향적이라고 믿었다. 일단 목표를 정한 다음에는 온 힘을 다해 앞으로 질주할 뿐, 뒤를 돌아볼 새가 없었다. 목표가 흔들리면 부모님이 요구사히는 만큼 성과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아무리 뜻깊다 해도 내가 즐겁게 감당할 수 있는 자극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인정하지 않고 계속 버틸 수도 없었다. 목표가 이루어지니 문제가 곧 드러났다. 이루지 말아야 할 목표를 이뤘음을 깨달았다. 뒤늦게 성격을 바꾸려 책을 찾고, 인터넷을 검색하고, 모임에 나가고, 자기 암시를 했다. 그렇게 아무리 부정해도 내향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섬세함과 꼼꼼함 혹은 예민함과 소심함은 여전했다.
공부할 때는 꼼꼼하고 걱정 많은 게 장점이었는데, 일을 시작한 뒤로는 명백한 단점이 되었다. 직장 생활과 관련하여 부모님과 선배 선생님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조언은 "너무 꼼꼼히 하려고 하지 마라",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라"이다.
그런 조언을 들어도, 내 어떤 행동이 지나치게 꼼꼼한 것이고 잘하려고 하는 것인지 스스로 알아챌 수 없어 답답했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보니 무엇을 멈추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몰라서 그랬다고 할 수만은 없다. 막상 누가 콕 찍어 알려주어도 정말 그만큼만 해도 되는지 불안했기 때문이다.
바구니를 든 캐릭터가 좌우로 이동하며 하늘에서 내려오는 물체를 받는 게임을 해본 적이 있다. 만약 우리가 그 게임 속 캐릭터라면, 바구니 대신 어떤 체를 가지고 태어나는 거라면, 나는 대부분의 사람보다 눈이 더 촘촘한 체를 갖고 태어났나 보다. 그래서 하늘에서 일감이 떨어질 때 다른 사람의 체를 통과해버리는 것도 내 체에는 그대로 남아 무게를 더한다.
그동안 눈의 크기를 늘리려고 열심히 잡아당겼으니 처음보다는 분명 커졌다. '원칙'에서 조금은 멀어졌다. '융통성'에 조금은 가까워졌다. 하지만 아직이다.
불평이 많은 아이, 행동이 거친 아이, 자주 싸우는 아이, 나를 초등학생처럼 대하는 선배 선생님, 선생님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라는 학부모 등 사람 대하는 것이 어려울 때도 많다. 다양한 성격과 연령대의 사람들과 두루 잘 어울려야 하는 직장 생활과 달리, 학창 시절에는 친한 친구 한두 명만 있어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었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무척 재미있었다. 친구 만나는 재미로 학교에 다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 만나는 것 때문에 힘들어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교사'가 '사교형'에게 어울리는 직업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나를 제대로 알았더라면 그렇게 생각 없이 이 직업을 선택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사교형'이라고 믿고 있었다. '사교형'이 되고 싶은 '비사교형'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외향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에 현실을 외면했다.
사실은 새 학년이 되면, 새로운 친구를 만날 생각에 설레기보다는 빨리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여러 친구들과 두루 어울려 지내기보다는 한두 명의 단짝과 깊이 사귀는 것을 좋아했다. 단짝 친구들 앞에서는 외향적인 척 행동했지만, 그 외의 사람에게는 그러지 못했다.
대학에 입학한 후에야 내가 내향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굴복했다. 입학을 앞두고 대학 사람들을 처음 만나는 새내기배움터에서부터 얼마나 곤혹스러웠는지 모른다.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곳에서 처음부터 관계를 시작해야 하다니. 나의 대학 생활은 알코올 음료를 앞에 두고 동기, 선후배, 교수님, 다른 대학교 학생들과 왁자지껄하게 하하호호 즐기는 날들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다.
선생님으로 발령받은 후에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선배 선생님은 어려웠고, 또래 선생님은 나와 너무 다른 것 같았다. 가족 같은 교육대학교를 졸업해서 가족 같은 교직 사회에 제 발로 들어와 놓고, 나는 혼자 쉬고만 싶었다. 하지만 회식에도 직원 여행에도 빠지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대학 생활 4년 동안 그랬듯, 긴장과 불안과 피로 속에서, 끝날 때까지 울상으로 조용히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친구들과 하는 수다를 정말 좋아했기 때문에 나는 내가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 서로 잘 아는 믿음직한 단짝 한두 명과 대화하는 것은, 내 이야기에 전혀 관심 없고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어린이 30명을 가만히 앉혀둔 채 적어도 하루에 네 시간씩 그들이 싫어하는 일(수업)을 하는 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해마다 말수가 줄었다. 아이들을 간신히 집에 보내고 나면, 더는 입을 열고 싶지 않다.
살면서 한 번도 반장이 되고 싶었던 적이 없다. 앞에 나서서 뭔가를 하는 것이, 특히나 다른 사람을 대표하고 이끄는 일이 내게 매력적이었던 적은 단 한 순간도 없다. 언제나 공포였다. 그래 놓고 선생님이 되겠다고 생각했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선생님이 되면 학생들이 내게 집중하게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민주적인 교실이라도 어느 정도는 선생님이 통솔해야 한다. 통제도 해야 한다.
칭찬만 하며 살 수는 없는데, 나는 누군가를 혼내는 것이 너무 부담스럽다. 하기 싫다. 게다가 나보다 큰 아이들을 이 작은 목소리로 '제압'하기 위해서는, 상대가 초등학생일지라도 용기가 필요하다. 남 보기에 아무리 우스워도 내게는 그것이 사실이다.
도대체 얼마나 우둔하면, 그런 사람이 앞에 나서서 말하고 다른 사람을 이끌어야 하는 일을 직업으로 택했을까. '아빠에게 혼나지 않을 직업', 그 생각밖에 하지 못한 대가를 지금도 계속해서 치르고 있다.
선생님으로 일을 시작한 직후, 이렇게 맞지 않는 옷에 나를 욱여넣느라 괴로운 것은 대학 입학 원서를 쓸 때 내가 '나'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나'를 알려면 내 성격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보다 더 열심히 성격유형을 알아보았다.
대학 때부터 직장생활 초반까지는 진로와 관련된 성격유형을 주로 찾아보았다. 홀랜드 성격 검사와 다중지능검사를 알음알음 해 보았다. '커리어넷'이라는 사이트에 있는 심리 검사도 다 해보았다.
하지만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검사 받으려면 내가 각 문항에 해당되는지 안 되는지 혹은 얼마나 해당되는지 스스로 판단해서 입력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이것도 저것도 다 내 이야기 같았다. 이 유형도 저 유형도 다 내 이야기 같았다. 한참 고민해서 하나 고르기는 했지만,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가 정말 내 이야기가 맞는지 아리송했다.
흥미보다는 재능을 알고 싶었던 것도 심리 검사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낀 이유 중 하나다. 내가 해본 검사들로 어떤 분야에 흥미가 있는지는 알 수 있지만, 내게 어떤 재능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중지능 검사가 그나마 재능에 가깝긴 했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은 아니었다.
그때는 '내가 무엇에 흥미가 있는지' 같은 것은 알아봐야 소용없다고 생가했다. 흥미가 아무리 많아도 결국 재능이 없으면 당장은 그 재능을 활용한 직업인이 될 수 없으니 말이다. 시간을 들여 흥미 있는 분야를 충분히 공부해서 취직하는 방법은 눈에 차지 않았다. 하루빨리 학교를 그만두고 다른 직업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직업이 어울릴 거라는 결과가 나와도, 지금의 내게 그럴 능력이 있을지 몰라 막막했다.
그러다 진로와 무관한 성격유형에까지 관심이 커졌다. DISC 성격 유형, 에고그램, 좌뇌형 우뇌형 등에 대해 찾아보았다. 나중에는 책과 인터넷을 넘어 오프라인에서도 유료 강의를 듣거나 모임에 다니기 시작했다. 에니어그램을 공부하는 모임과 MBTI를 공부하는 모임이었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만나는 것보다 안 만나는 것이 더 편한 내가, 학교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황금 같은 주말에 낯선 사람들을 만나러 낯선 장소에 갔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나에 대해 알아내는 일이 그만큼 간절했다. 한편으로는 성격유형을 공부하는 것이 재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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