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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의 고민: 직업

진로 결정 실패 사례-초등학교 선생님, 초등 교사

2. 내가 선생님이 된 이유

 

 

 

 

 

 

 

  더는 좋은 선생님인 척 연기할 힘도, 능력도 없다.

 

 

  전에는 아이들에게 이상적인 선생님의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다. 교과서 안팎의 지식을 충분히 지니고, 재미있게 잘 가르치고, 바른 언어를 사용하고, 일관되게 규칙을 적용하고, 공평하고, 민주적이고, 카리스마 있고, 매사에 모범적이고, 온화하고, 모든 아이를 사랑하는 선생님이고 싶었다.

 

 

  그래서 그런 모습과 관련 없는 개인적인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하지 않았다. '내가' 어떤 TV 프로그램과 과자를 좋아하는지, '내가' 주말에 뭘 했는지 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그런데 요즘은 자꾸 새어 나온다. 태어나지 말아야 했다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까지 해버렸다. 가족관계로 힘들어하고 있는 우리 반 아이에게 위로가 되고 시었다. 전처럼 아이들과 선을 그은 채 나를 숨기며 완벽하고 이상적인 선생님을 연기하기엔 지친 탓이기도 했다.

 

 

  혹시 경력이 늘어 긴장감이 적정 수준을 찾은 덕분에 내 이야기를 할 여유가 생긴 것은 아닐까?

 

  

  아니다. 학교에서 내 심장은 너무 빨리 뛰고 숨 쉬는 일은 어렵다. 전에는 그래도 퇴근 후에 행복했는데, 요즘은 퇴근해도 여전히 우울할 때가 있다. 그동안은 우울한 원인이 확실하고 그 원인이 제거되면 행복했으니 우울증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곧 ······.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이들에게 인간적으로 다가가니 긍정적이라고 봐야 할까?

 

 

  모르겠다. 전에는 적어도 아이들 앞에선 기억 잘하고 빠릿빠릿한 선생님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진지하게 치매의 증상을 검색하는 처지다. 방금 알림장 검사를 해놓고, 빨리 검사받으라며 아이들을 재촉한다. 분명 '사물함'을 떠올리며 말했는데, 나는 몰랐지만 입으로는 '신발장'이라고 말했단다. 그렇게 말이라도 했으면 다행이고, 아예 단어 자체가 생각나지 않을 때도 많다. 틀린 문제를 맞았다고, 맞은 문제를 틀렸다고 채점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방금 뭐라고 말했냐며 아이들에게 되묻느라 소통이 원활하지 않을 때도 있다. 청력 문제인지, 말소리는 들리는데 단어로 인식되지 않고 뭉개져서 들린다. 전에는 내 수업이 재미있다며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하품하느라 분주한 입들만 눈에 띈다. 이런 와중에 새어 나오는 내 이야기를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전에는 어떠했다며 '왕년에' 이야기를 달고 살고, 여기저기 아프고 지친다며 빌빌거리는 나는, 그래 봤자 30대 초반이다. 아주 건강할 나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많이 안 좋을 나이도 아니지 않나?

 

 

  대체 왜 이 일을 시작했을까? 왜였을까?

 

 

  왜였을까.

 

 

 

  당장 떠오르는 것은 일본 순정만화 '러브 콤플렉스'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의 꿈이 선생님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빨간 머리 앤이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일했다는 것, 빨간 머리 앤 이야기를 쓴 루시 모드 몽고메리도 선생님으로 일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너무 좋은 나머지 그들처럼 되려고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그들을 좋아한 것은 맞다. 하지만 선생님이 되겠다고 결심한 후에 그 결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내가 좋아하는 이 사람도 선생님이고, 이 사람도 선생님이고, 그러니까 선생님은 좋은 거야. 선생님이 되자'라고 생각하는 데에 그들을 '이용'했다.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던 셈이다. 선생님이 되겠다는 결심을 유지하는 데 그들이 왜 필요했을까? 당연히, 그렇게 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 떠오르는 것은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창의적인 조지와 프레드, 인터넷에 떠돌던 초등학생들의 웃긴 시험 답안지다. 그렇게 재치 있고 기발한 아이들과 함께라면 내 삶도 즐거울 것 같았다.

 

 

  고등학교 때 복도 창문으로 보이던 옆 초등학교의 아이들, 내가 고등학생일 때 아직 초등학생이던 막내 동생도 떠오른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면 그렇게 귀여운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렜다.

 

 

  칠판에 직접 풀이 과정을 적은 뒤 발표하던 고등학교 수학 시간도 생각난다. 그 시간에는 모두가 발표해야 했다. 못하면 맞았다. 살벌한 분위기 속에 칠판만 쳐다보며 누가 듣건 말건 혼자 웅얼거렸다. 문제를 풀어 선생님께 맞지 않은 탓일까? 그때의 기억이 너무 미화되었다. 그렇게 혼자 1분쯤 떠든 것을 가지고, 선생님이 되어 수업하는 것도 큰 무리 없이 할 수 있으리라 크게 착각했으니 말이다.

 

 

  그 기억 뒤에는 수학 문제 푸는 법을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알려주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내가 방법을 알려주었을 때, 예의 바른 친구들이 고맙다고 듣기 좋은 소리를 해 준 것에만 너무 의미를 부여한 것이 잘못이었다. 내가 그 문제를 풀 수 있을지 걱정되어, 방법을 설명하기 전에 항상 먼저 풀어보고 정답을 확인해야 했던 소심함을 우습게 생각해버렸다. 문제 하나를 설명하는 데에도 그렇게 준비해야 한다면, 적어도 매일 네 시간씩 이어지는 수업은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다.

 

 

  '바쁜 부모님께 받지 못한 사랑을 선생님에게 대신 구하는, 나 같은 아이들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자', '언제나 아이들을 믿어주는 단 한 사람이 되어주자'라고 다짐하기도 했었다. 훌륭한 선생님으로서 그런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내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대학 생활 한 학기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사실 지금까지 떠올린 기억은 다 포장이다. 내게 매력적이지 않던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목표를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 겹겹이 덧붙인 포장과 장식에 불과하다. 

 

 

  실은 부모님 때문이었다. 내 두려움 때문이었다. 다른 진로를 선택하기가 무서웠다. 부모님께 욕 듣고 맞고 무시당하고 경멸당할 것이 두려웠다. 혼나지 않을 수 있는, 미성년자인 내가 그나마 덜 미움받으며 안정적으로 가정생활을 하게 해줄 장래 희망은 내가 파악하기에 딱 세 가지였다. 의사, 판사, 교사.

 

 

  드라마 '허준'이 인기를 끌던 때, 사상의학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유형을 나누어 체형과 성격까지 말해주는 사상의학이, 혈액형별로 성격을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해 보여 재미있었다. 관심을 보이자 아빠가 기뻐하셨고, 나도 기분이 좋았다. 건강해지라고, 키 크라고, 소화 잘하라고 어릴 때부터 보약을 꽤 먹었으니 한의학이 낯설지도 않았다. 게다가 한의사는 피를 볼 일도 별로 없고, 아빠의 어릴 적 꿈이었다고 한다. 그래, 이제 내 꿈은 한의사야!

 

 

  웬걸. 이과 수업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게다가 한의대생이 쓴 책을 보니, 해부도 해야 하고 머리에까지 침을 놓아야 한단다. 어쩌지?

 

  

  법과 관련된 직업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의사가 그렇듯 판사가 되기 위해서도 수능 후에 한참을 더 치열하게 공부해야 한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다시는 공부하고 싶지 않았다. 곧 달라졌지만, 그때는 교육대학교에 일단 입학하면 임용 시험은 대부분 합격한다고 들었다. 그러니 내게 남은 길은 선생님뿐이었다.

 

 

  영어를 좋아했기 때문에 교육대학교가 아닌 사범대학교에 입학해서 영어 선생님이 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내 작은 키로 중고등 학생을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결국 한의사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목표를 바꿨다. 아빠가 어떻게 반응할지 조마조마해 하면서.  

 

 

 

  고등학교 때 나는 목표가 필요했다. 점수를 어느 정도 받아야 하는지 기준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뭐가 됐든 일단 '목표'가 생긴 후에는 이런저런 이유를 만들어가면서 거짓 열정을 키워갔다. 오직 필요한 점수를 받는 데 매진했다. 목표를 제대로 정한 것인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되었다.

 

 

  대학교 4학년 때, 눈앞에 닥친 '임용 시험'이라는 장애물을 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합격자를 대상으로 하는 신규 교사 연수에 참석하라는 말을 듣고 참석했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포기 각서를 쓰지 못하고, 임명장을 받으라는 말에 받았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처음에 어떤 이유로 목적지를 그렇게 설정했든, 잘못 설정한 것을 알고도 수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되었다. 잘못된 방향으로 열심히 달렸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