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선생님이 뭐가 힘들다고
나는 했던 말을 또 하는 것이 너무 싫다. 하지만 아이들은 계속 묻는다. 같은 질문을 계속한다. 서로 다른 아이들이 같은 질문을 계속한다. 저학년일수록 심하지만, 고학년이라고 한 번에 알아듣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건 어른도 마찬가지다. 나도 그렇다. 그러니 수업 중에 다른 생각을 하다가 못 들은 것이어도, 질문하는 아이들을 탓할 수만은 없다.
이건 내 문제다. 학생이 잘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도록 몇 번이고 쉽게 풀어가며 설명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 아닌가. 했던 말을 또 하기 싫다는 건 선생님에게 큰 결격 사유다.
다른 결격 사유도 많겠지만, 수업하는 것이 괴롭다는 것도 문제다. 수업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어떻게 계속 선생님을 할 수 있을까? 물론, 오랜 반복 훈련으로 이제는 처음만큼 긴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전보다 덜한 것일 뿐, 여전히 긴장하고 불안하고 떨고 걱정한다. 피할 수만 있다면 언제든 피하고 싶다.
그래도 계속 함께 지내온 우리 반 아이들과 수업하는 것은 재미있을 때도 있다. 여전히 준비를 많이 해야 하지만, 그만큼도 굉장한 발전이다. 하지만 새 학년이 되어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야 할 때, 결근한 선생님 반에 갑자기 보결로 들어가 아무런 준비 없이 낯선 아이들과 40분을 보내야 할 때, 한 달에 한 번씩 다른 반 아이들과 동아리 수업을 할 때는 긴장과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하다.
같은 학년 선생님, 교감 선생님, 교장 선생님, 장학사 등을 모시고 수업을 공개하는 동료 장학, 임상 장학, 컨설팅 장학뿐 아니라, 낯선 어른들 앞에서 나를 소개한 뒤에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어머니회 일을 누군가에게 맡겨야 하는 학부모 총회 날도, 엄마, 아빠뿐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아직 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어린 동생까지 찾아와 교실을 가득 메우는 학부모 공개 수업 날도 힘들다. 그냥, 남들 앞에 나와서 말을 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 내게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싫다.
교사별 평가가 시행된 후로는 그런 일이 많이 줄었지만, 한 학년 전체가 같은 문제로 시험을 보던 때에는 서술형 문항의 정답을 어디까지 인정하고 어디부터 오답으로 할지 정하는 일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출세 전에 아무리 허용 답안을 생각해두어도, 막상 학생들의 답지를 받아보면 매번 그렇게 참신할 수가 없다. 채점에 앞서 조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만장일치로 쉽게 진행된 적이 없다. 학급수가 많을수록 혹은 선생님들의 성향에 따라, 채점 기준에 대한 의견 차가 두드러진다. 팽팽하게 의견이 맞서는 회의는 싸움을 방불케 한다. 싸움 아닌 싸움을 하는 동안은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시간이 참 오래 걸린다. 전문성을 추구하는 입장에서 보면 긍정적인 배움과 성장의 시간이겠지만, 내게는 너무 불편하고 힘든 시간들이었다.
그 힘든 시간을 보내며 간신히 기준을 정하고 나면 이제는 나와의 싸움이다. 미처 논의하지 못한 또 다른 '창의적인' 답안은 언제나 우리 반 시험지 곳곳에서 나타났고, 나는 맞는 건지 틀린 건지 스스로 판단하지 못했다. 내가 맞다고 채점했는데 다른 반에서는 틀렸다고 채점하거나, 나는 틀렸다고 채점했는데 다른 반에서 맞다고 채점하면 곧바로 학부모님들의 레이더망에 걸리게 되어 있다. 그러니 나는 이보다 더 묻는 것이 죄송스러워질 때까지 다른 반 선생님께 계속해서 여쭤봐야 했다.
그렇게 채점한 시험지를 집으로 보내고 나면, '우리 아이가 쓴 답이 왜 틀렸냐'부터 '대체 이 시험 문제는 누가 낸 거냐'까지 다양한 학부모 민원이 생기곤 했다. 정말 곤란할 때는 내가 동의하지 않는 일로 민원 전화를 받을 때다. 나는 허용 답안이라고 생각하지만 동학년 회의 끝에 결국 오답 처리하기로 한 문제 때문에 항의 전화가 걸려올 때다. 억울하지만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왜 오답 처리가 되었는지 회의 결과를 반복해서 안내하거나, 감정에 공감하면서 학부모님이 전화를 끊어주실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런 전화는 왜 우리 반에만 올까? 내가 다른 문제보다 그 문제를 특별히 더 언급하거나 덜 언급한 것도 아닌데. 특별히 더 자신 있게 해설하거나 덜 자신 있게 해설한 것도 아닌데. 그리고 오답이라고 강력히 주장하신 선생님 반에는 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러 전화하거나 찾아오지 않을까?
시험이 끝나 채점 기준을 검토하고 채점하는 것도 괴롭지만, 공정성에 신경 쓰며 학생들을 지켜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험 감독도 참 지루하다. 적절한 시험 문제를 내기 위해 연구하기도 쉽지 않지만, 정렬, 자간, 줄 간격, 글씨체, 글씨 크기, 띄어쓰기 등 시험지 편집에 들이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 시험은 학생들에게만 괴로운 것이 아니고 선생님인 내게도 언제나 고통스럽다.
가게 문 닫았는데 직원 휴대전화로 문의 전화를 하는 손님이나, 병원 문 닫았는데 의사 휴대전화로 연락하는 환자를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왜 선생님은 퇴근 후와 주말에 개인 휴대전화로 학부모의 연락을 받게 될까?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건 나뿐일까?
정말 급한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그 '정말 급한 상황'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아직까지 겪지도, 주위에서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다음 날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연락하면 절대 안 되는 일, 반 친구들이 아니라 꼭 담임선생님에게 문의해야 할 내용이란 어떤 것일까?
왜 예의상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한밤중에 담임 선생님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했던 말을 또 하게 하고, 자기 아이만 편의를 봐달라는 장문의 문자 메시지를 남기고, SNS로 준비물을 물어보는가? 그러면서 왜 지각이나 결석은 미리 말해주지 않는가? 나는 친구도 전문 상담가도 아닌데, 왜 위로받기를 바라며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에 대해 한 시간씩 하소연하는가? 부모의 의무에는 매우 관대하면서 선생님의 의무에는 왜 그리 엄격한가? 왜 자꾸 말할 때 반말을 섞는가?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내가 너무 흥분했다. 하지만 학부모에게 전화가 오면,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오면, 또 무슨 사고가 났나 싶어 불안한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선생님으로 일하기 시작한 첫 주의 기억이 조금씩 희미해져 간다. 그때 내 업무(수업과 학급 관리 외에 학교 운영에 필요한 업무)는 학교 컴퓨터들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컴퓨터가 장부에 적힌 위치대로 있지 않았다. 교감 선생님께서는 발령 후 첫 토요일에 출근해서 해결하라고 하셨다.
그때도 주 5일제가 시행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 토요일은 출근일이 아니었다. 내가 수업이 없어서 업무만 할 수 있고, 학교에 아무도 없어 다른 교실이 비어있다는 이유로 토요일에 나오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교감 선생님께서는 모든 교실에 들어가 눈으로 확인하며 컴퓨터의 실제 위치대로 장부를 정리하라고 하셨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 건물에서 70개 이상의 공간을 돌며 일일이 확인할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그래도 그렇게 하라고 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선생님들이 퇴근하실 때 교실 문을 잠그지 않아야 한다. 교감 선생님께서 금요일에 전체 메시지를 보내라고 하셨다. 모든 공간에 들어가야 했으니 나는 모든 선생님께 메시지를 보냈다. 교장실에도 컴퓨터가 있으니 교장 선생님께도 보냈다.
그런데 교장 선생님께는 메시지를 보내면 안 되는 것이었다. 첫 번째 잘못이었다. 메신저에 교장 선생님이 있다고 메시지를 보내도 되는 것은 아니었다.
교실로 전화가 왔다. 교장 선생님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라 깜짝 놀랐다. 그래도 공손함을 표현하려고, 묻는 말씀에 "네, 선생님"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안 되는 것이었다. 두 번째 잘못이었다. '교장' 선생님이라고 해야 했다.
교장 선생님께서 내게 교장실로 오라고 하셨다. 임용 시험 중 면접을 대비한 연습에서 그랬듯이, 교장실 문에 노크하고, 들어오라는 대답을 들은 뒤에 들어갔다.
그러나 교장실에 교장실 문으로 들어가면 안 되는 것이었다. 세 번째 잘못이었다. 교장실에 문이 있지만, 그 문은 아무나 사용할 수 없었다. 복도에 있는 교장실 문은 감히 한낱 평교사가, 그것도 신규 교사가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교장실 바로 옆에 있는 행정실에 먼저 들어간 다음, 행정실에서 교장실로 연결된 문을 통해 들어가야만 했다. 그 교장 선생님 때는 그랬다.
결국 나는 도대체 대학교에서 뭘 배웠냐는 고함을 한참 듣고 난 뒤에야, 두려움에 떨며 교장실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다음 날인 토요일에는 내가 발령받기 전에 이 업무를 맡다가 다른 학교로 전근 가신 선생님과 함께 텅 빈 학교에서 컴퓨터를 조사했다. 나는 학교 업무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고, 학교에서는 그 선생님께 연락하라고 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 선생님께 정말 죄송하고 감사하다. 이후 교직 생활에서 이런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일요일에는 그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교장 선생님께 구구절절한 사죄의 편지를 썼다. 월요일에는 아침 일찍 집을 나와 편의점에서 음료를 샀다. 혹시라도 교장 선생님과 마주칠까 조마조마해 하며 교장실 책상에 편지와 음료를 두고 나왔다.
학교에 '문화 연수'라는 것이 있다. 일반 회사에 다녀보지 않았으니 무엇과 비슷하다고 설명하기 어렵다. 사실 나도 문화 연수의 정확한 정의나 취지는 모른다. 그동안 경험한 바로는 같은 학년 선생님들 간에 친목을 다지는 날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문화 연수가 오후 1시부터 자정까지 이어진 적이 있다. 7시에 퇴근해서 12시까지 회식을 한 것이 아니고, 1시부터 12시까지였다. 수업이 아주 일찍 끝난 날에 햇빛이 쨍쨍한 야외에서 약한 강도의 스포츠를 한 후, 카페에 갔다가,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신 뒤, 노래방에 가는 일정이었다.
그즈음 내 상태는 무척 좋지 않았다. 체력과 면역력이 바닥인 시기였다. 처음으로 지루성 피부염이라는 진단을 받고 일주일이 막 지났을 때였다. 선크림은커녕 스킨, 로션도 바르지 못하고 물로만 세수해야 했던 시기였다. 볼이 너무 뜨겁고 따갑고 붉어서 약을 먹고 발라도 괴롭던 시기였다. 열과 따가움을 견딜 수 없어 물 적신 화장솜을 볼에 붙인 채 수업했다. 그때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지금 와서는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왜 병가를 쓰지 않았을까?
지루성 피부염의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와 의사 선생님의 조언과 내 경험에 따르면, 햇빛과 스트레스와 피로는 지루성 피부염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킨다.
그 문화 연수 일정은 지루성 피부염을 앓고 있는 내게 전혀 좋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그렇게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했거나, 함께 있으며 마음에 무척 위로가 됐다면 그날이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그해에 매 쉬는 시간마다 연구실(학년별 교무실)에 가지 않고 교실에 있다는 이유로 같은 학년 선생님들에게 미움받는다고 느끼고 있었다. 나는 자리를 비울 때마다 싸우는 아이들을 내버려 둘 수 없었고, 늦게 퇴근하지 않으려면 쉬는 시간에도 업무를 처리해야 했고, 너무 진이 빠지는 날에는 그냥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 혼자 쉬고 싶었다. 하지만 노련한 선배 선생님들은 금세 업무를 마쳤고, 자주 모여 관계를 다지는 것으로 피로를 풀고자 하셨다. 같은 학년의 모든 선생님이 외향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학년 분위기는 털털하고 빠르고 화끈하고 외향적이었다. 나는 미처 따라가지 못해 헉헉했다. 그 모습이 곱게 보이지 않은 것 같다. 꼭 그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지만.
지루성 피부염이라고 진단받기 2주쯤 전에는 운동회를 했었다. 운동회를 위해 학년별로 몇 달 동안 같은 동작의 무용을 교실과 운동장에서 줄기차게 연습했다. 땡볕에서 나는 아이들 줄 못 세운다고 같은 학년 선생님들에게 구박받고, 아이들은 동작이 작다며 내게 혼나던 예민한 날들이었다. 만국기와 천막까지 운동장에 직접 설치해가며 혼신을 다해 준비한 운동회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희망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운동회가 끝나면 회식하겠다는 메시지가 학교의 모든 선생님에게 도착했다. 힘들면 굳이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적혀 있었다.
힘들면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명시한 회식 공지를 받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마지막이기도 했다). 그래서 용기를 냈다. 참석하지 않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같은 학년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그분은 메시지를 보낸 분이 아니다. 운동회 날 있을 회식을 담당하는 분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떻게 금세 아셨는지, 다른 스케줄도 없으면서 왜 가지 않느냐고 나를 '혼냈다'. 다른 일이 있어서 못 간다고 거짓말을 해야 했는데, 힘들어서 쉬겠다고 사실대로 말한 것이 잘못이었다.
결국은 개인적인 일과 업무적인 일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상태에서도 의무가 아닌 회식에 끌려가야 했다. 한 동생은 일 년 전에 죽었고, 한 동생은 엄마를 죽이고 싶다는데, 그 동생이 지금 내 집에 혼자 있는데, 학교 일도 내 몸도 너무 힘든데, 내가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니고, 분위기를 띄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은커녕 소리 낼 힘도 없는데, 거기서 분위기 맞출 힘이 없는데. 하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가야 했다.
안 그래도 미운데, 초보라 실력이 없어서 끙끙대고 오래 걸릴 뿐 업무량 자체는 자기보다 적을 것이 뻔한데, 나이도 어린 게 큰 병도 없으면서 골골거리면, 억지로 끌고 가는 한이 있어도 편히 쉬게 해주고 싶지는 않은가 보다. 이럴 때 좋은 뜻에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야 성숙한 어른일 것이다. 하지만 그 좋은 뜻이 뭔지 아무리 헤아리려 노력해도, 아직은 잘되지 않는다. 이렇게 나쁘게 말하지 않고 좋게 돌려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직 그러지 못한다.
하지만 직장인이라면 다 겪는 일일 것이다. 더한 일을 겪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도 참고 잘 지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게 왜 그것도 못 참느냐고, 그것도 못 참으면 어떻게 사냐고들 하는 것일 테다.
그러면, 도무지 안 참아지는데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것도 못 참으면서 어떻게 사냐는 말은, 못 참으면 살 수 없다는 뜻인가? 그럼 나는, 살지 말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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