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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의 고민: 직업

교사 그만두기 전, 그만두지 못했던 이유

14. 근데 왜 못 그만둬?

 

 

 

 

 

 

  내가 다닌 교육대학교에서는 4년 동안 교생 실습을 네 번 나갔다. 두 번은 참관 실습이었고, 두 번은 수업 실습이었다. 참관 실습 때는 배정받은 학급에서 선생님이 수업하는 모습을 참관하고, 연수를 듣는다. 수업 실습 때는 참관도 하고, 연수도 듣지만, 수업이 추가된다. 지도안을 작성해서 선생님께 검토받고, 수업 자료를 만들고, 배정받은 학급의 아이들과 직접 수업을 해 본다.

 

 

  당연하게도 수업 실습이 더 괴로웠다. 참관 실습도 괴롭기는 했다. 하지만 수업 실습을 하고 나니 참관 실습이 대체 뭐가 괴로웠나 싶었다. 그냥 보기만 하면 되는데.

 

 

  선생님이 꿈이라면 아무리 실습이 힘들어도 아이들을 보면 힘이 나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이 귀엽기는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나는 교생 실습 기간 내내 그저 빨리 실습이 끝나기만을 바랐다.

 

 

  그러다 생각했다. '이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 기다리며 사는 건, 빨리 죽고 싶어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이런 식이라면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주말이, 방학이, 퇴직이 빨리 오기를, 시간이 빨리 지나기만을 바라고 있다.

 

 

  도대체 직장을 한 번 그만두는 게 뭐가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아직까지 이러고 있을까. 몇 번씩 그만두고 다시 취업하는 일반 직장인들을 보면 내가 이상하다.

 

 

  그만두고 싶다고 하면 친구들은 말한다. "나도 그만두고 싶다", "적성에 안 맞으면 그럴 수밖에 없지", "아직도 안 그만뒀어?"

 

 

  내가 부동산 중개인에게 무시당하는 이유가 서른 살에도 아빠랑 같이 방을 보러 다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스무 살부터 혼자 계약해온 화끈한 막내 동생은 이 소심함과 우유부단함을 더는 상대해 주지 않는다.

 

 

  아빠는 "미쳤냐". "귀신에 씌었냐. 굿해야겠다", "그것도 못 하면 네가 할 수 있는 게 대체 뭐가 있냐. 예쁘기를 하냐, 키가 크냐,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냐", "교사는 귀족이다. 그런 직업 어디 없다"라고만 한다.

 

 

  나도 모르겠다. 나도 궁금하다. 내가 과연 뭘 할 수 있을까. 그걸 알았으면 진작 그만뒀다. 그만둘 생각은 못 하고 죽을 생각만 했다는 건, 교사가 아니면 살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지역 임용 시험에 합격한 사람이나 명예 퇴직자를 빼면, 정년이 되지 않았는데 퇴직하는 선생님을 10년 가까이 한 명도 보지 못했다. 몇십 년 전에 육아를 위해 퇴직했다가 아이가 다 큰 요즘에 기간제로 일하시는 선생님을 한 분 보았을 뿐이다.

 

 

  초등학교는 정말 신의 직장일까? 그래서 그만두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는 걸까?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요즘 취업하기가 얼마나 힘든데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안 그래도 교육대학교 출신으로는 일반 회사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사업 하나 시작하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지 아냐고, 이만한 직업을 또 구하기는 어렵다고, 그렇게 이야기가 끝난다.

 

 

  초등교사 커뮤니티에도 그만두고 싶다는 글들이 올라온다. 대개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는 위로의 댓글이 달린다.

 

 

 

  외국으로 파견 가는 배우자를 따라 휴직하거나, 아이를 낳아 휴직하는 선생님들이 부럽다. 물론 당사자들은 마냥 좋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동반 휴직과 육아 휴직은 무척 매력적이다. 경력 10년 미만의 교사가 유학 가지 않고, 아프지 않고, 부모님이 편찮으시지 않아도 할 수 있는 휴직이기 때문이다.

 

 

  동반 휴직은 배우자가 외국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함께 출국하기 위해 사용한다. 귀국하면 다시 복직할 수 있고, 그전까지는 일을 쉴 수 있다. 그에 따르는 어려움도 분명 있겠지만, 장점이 단점을 모두 덮을 것만 같다.

 

 

  육아 휴직은 마냥 좋아 보이지만은 않는다. 육아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워낙 많이 들었고, 어릴 적 막내 동생을 키우는 엄마를 보며 간접적으로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어차피 힘들 거라면, 1년 뒤에 헤어질 다른 사람의 자녀 몇십 명을 돌보느라 힘든 것보다는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 한두 명을 돌보느라 힘든 것이 낫지 않을까? 

 

 

  동반 휴직을 하기 위해서는 당장 외국으로 파견 나갈 예정인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 육아 휴직을 하기 위해서는 아이를 낳아야 한다. 일을 몇 년 쉬기 위해 조건 맞춰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고? 그냥 퇴직하면 될 일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대로 가다간 죽겠다' 싶어도, 기다리면 방학이 온다. 그래서 쓰러지지 않도록 심신을 재정비할 수 있다. 학교와 선생님에 따라 방학에도 줄기차게 출근하고 끊임없이 연수를 듣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자진해서 교직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정년과 노후도 보장된다. 과연 정년까지 건강하게 버틸 수 있을지, 내가 이 일을 수십 년 하고도 건강할 수 있을지 의문이고, 연금과 관련해서 안 좋은 말들이 많이 들리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사표를 쓰지 못한 것은 그런 것들이 아쉬워서라기보다는, 두려워서다.

 

 

  얼마 전까지는 내가 사표를 썼다고 하면 아빠가 쫓아와서 욕하고 소리 지르고 때릴 것 같아 두려웠다.

 

 

  이제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은 아빠가 그렇게 힘이 넘치지도 않고,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져도 내가 문을 열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님은 예나 지금이나 강력하게 반대하신다. 교직을 그만두면 무척 상심하실 것을 안다. 걱정이다. 하지만 당장 직업은 없어도 내가 잘 살아있는 게, 불평 속에서 끝이 오기만을 바라며 교사로 골골거리다 단명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마냥 철없고 이기적인 생각일까?

 

 

  그만두겠다고 주변에 말했을 때의 반응도 두렵다. 교장, 교감 선생님을 포함해서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선생님들의 반응은 아빠의 반응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강도가 약할 뿐, 나무라고 타이르고 꾸짖는 건 마찬가지일 것 같다.

 

 

  내가 이런 걱정을 하면, 주위에서는 '그 사람들은 너한테 그만큼 신경 안 쓴다. 그런 쓸데없는 고민은 하지 마라'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퇴직 의사를 밝혀야 하는 순간이 두렵다. 왜일까?

 

 

  아마 나는 내가 혼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표를 쓰겠다고 말하는 것이 큰 잘못이라고 무의식중에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사표를 쓰는 것이 정말 잘못일까? 부모님이 싫어하시니까, 할머니도 친척도 싫어하실 테니까, 미래의 배우자도 싫어할 테니까 잘못인 것 같다. 하지만 몸, 마음 상하면서 꾸역꾸역 다니는 것은 나한테 잘못하는 것 아닌가? 나한테 잘못하는 것은 괜찮나?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받아들이려 그렇게 노력하고도, 출근 한 번이면 금방 나를 거부하게 된다. 내게 없는 점이 부럽고, 있는 점이 미워진다.

 

 

  계속 버티면 미래의 밥벌이는 보장된다. 하지만 그 '미래'라는 것이 얼마나 길지 모르겠다. 그렇게 오래 살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교사를 그만두면 최소한 지금까지 겪었던 일 스트레스에서는 해방된다.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하지만 그 '행복'이 얼마나 갈 수 있을지 모른다. 밥벌이가 막막하기 때문이다. 이 일이 아니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그 일을 정말 할 수 있을지, 그 일로 밥 먹고 살 수 있을지 두렵기 때문이다.

 

 

  선생님을 계속하든 그만두든 얼마 못 살 것 같다고 고민하다가, 이 또한 누군가에겐 배부른 소리일 거라는 생각에 이런 고민을 해도 될지 고민하다가, 이렇게 걱정 많은 나를 걱정하며 오늘 하루도 답을 찾지 못한 채 지나가 버리고 만다.

 

 

 

1부 끝.

 

 
*나머지 내용은 <선생님이 뭐가 힘들다고> 책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전자책은 여기에서, 종이책은 원하시는 인터넷 서점에서 찾으실 수 있어요.

 

선생님이 뭐가 힘들다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부모님은 기쁘고 나는 괴로웠던 초등학교 선생님으로서의 시간, 가족과 서로 상처 주기 바빴던 어린 시절, 의원면직을 준비하는 마음을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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